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신 전쟁 (문단 편집) === 나가오카성 공방전 === 당시 일본에는 개틀링건이 총 3정 있었는데, 그 중 2정은 나가오카 번이 소유하고 있었다. 나가오카 번은 [[대정봉환]] 이후로도 도쿠가와 막부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나, 이 때는 무장 중립론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나가오카 번은 오지야에서 신정부군과의 담판에서 신정부군측에게 나가오카 번 침략 금지와 아이즈 번의 사면을 요구한 것이 거부당하면서 결국 신정부군에 맞서 오우에츠 열번 동맹에 가담하게 된다. 이후 나가오카 번군은 번주 마키노 타다쿠니의 가로이자 군사총독인 가와이 쓰구노스케의 지휘하에 신정부군에 맞서기 시작한다. 가와이 쓰구노스케는 셋타야의 고후쿠지에 본진을 세우고 신정부군이 나가오카 번을 침략하기 위해 점령했던 에노키 고게를 탈환하였다. 이렇게 되자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대리로 군을 지휘하던 도키야마 나오하치의 신정부군은 반격을 실시하였으나, 도리어 신정부군은 나가오카 번군에 격퇴당하고 지휘관인 도키야마가 전사하기에 이른다. 신정부군은 작은 번인 나가오카 번의 맹렬한 공격에 피해를 입자 나가오카 번의 병력이 나가 있는 틈을 타서 나가오카 성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와이 쓰구노스케의 기습으로 다시 빼앗겼고 신정부군은 일시 후퇴한다. 그러나 나가오카 번의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나가오카성 탈환전에서 가와이 쓰구노스케는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고, 신정부군은 다시 병력을 충원하여 5일 후 다시 공격하여 결국 나가오카 번은 함락당하고, 니가타 등 에치고 전 지역은 신정부군의 통제 하에 들어오게 된다. 가와이 쓰구노스케는 아이즈 번으로 망명하려고 하였으나 총상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나가오카 번은 [[개틀링 기관총]]을 비롯한 적절한 서양식 무기의 사용과 가와이 쓰구노스케의 노련한 지휘로 신정부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으나, 절대적으로 열세한 군사력과 국력의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이후 신정부군은 아이즈 번으로 북상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